하나님이 처음 창조하신 세상은 참으로 아름다운 세상이었습니다. 그곳에는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모든 것은 선했고, 사람은 에덴동산에서 풍성한 생명을 누렸습니다. 먹을 것이 있었고, 평안이 있었고, 두려움이 없었습니다. 우리는 이런 세상을 보통 ‘파라다이스’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참된 파라다이스는 단순히 쾌락과 편리함이 가득한 곳이 아닙니다. 맛있는 것이 많고, 고통이 없고,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곳이기 때문에 파라다이스인 것만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이 참으로 복되었던 이유는 그 세상 한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눈에 보이는 풍요보다 더 깊은 생명의 근원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말씀입니다.
사람은 단지 좋은 환경을 누리도록 지음받은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사람은 만물의 머리로 지음받았습니다. 하나님을 대신하여 온 세상을 다스리도록 부름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다스림은 힘으로 빼앗고, 욕망으로 차지하고, 자기 생존을 위해 다른 것을 사용하는 다스림이 아니었습니다. 이 다스림은 ‘사망’을 수단으로 삼지 않는, 온전히 ‘생명의’ 다스림이었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생명으로 믿고, 그 말씀 안에서 의와 평강의 다스림을 온 세상에 펼쳐야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람에게 선악과 계명을 주셨습니다―“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이 계명은 단순한 금지 명령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생명의 길을 분명히 보여 주는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생명이고 하나님 말씀을 버리는 것이 사망이라는 사실을 밝히는 표지였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만 본다면, 생명은 물질적 풍요처럼 보입니다. 먹고사는 것, 편리한 것, 안전한 것, 번영하는 것이 생명처럼 보입니다. 반대로 가난, 고통, 불편, 죽음은 사망처럼 보입니다. 물론 이런 것들은 우리의 삶에서 결코 가벼운 문제가 아닙니다. 그러나 성경은 더 깊은 차원을 말합니다. 참 생명은 단지 물질적 조건이 아닙니다. 참 생명은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사귀는’ 것입니다.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는 것입니다.
사람은 본래 흙으로 지음받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 코에 생기를 불어 넣으시자 사람이 ‘산 존재’가 되었습니다. 살아났습니다. 이 일은 사람이 자기 안에 생명의 근원을 가진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 줍니다. 사람은 하나님에게서 생명을 받는 존재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듣고, 믿고, 순종하며,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을 때 비로소 참 생명을 누립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말씀을 마음에 심어 열매를 맺으며 사는 것이 영생의 길입니다. 말씀 안에서 하나님을 아버지로 알고, 하나님께 의지하며, 하나님 뜻을 따라 사는 것이 사람의 본래 모습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단순히 오래 사는 생명을 주시려 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자신의 생명, 곧 영원한 생명에 참여하게 하시려 했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버렸습니다. 뱀의 유혹을 따라, 하나님이 주신 말씀보다 ‘눈에 보이는’ 열매를 더 크게 보았습니다.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운 것을 붙들었습니다. 이것이 죄의 시작입니다. 죄는 단순히 규칙 하나를 어긴 일이 아닙니다. 죄는 하나님 말씀을 생명으로 믿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 없이도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파라다이스성(性), 곧 쾌락과 생존과 번영만으로 생명을 구성하려는 것입니다.
그 순간 사람은 하나님과의 생명 관계를 끊었습니다. 무한하신 하나님을 생명의 근원으로 삼는 길을 버리고, 유한한 자기 안에서 생명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본래 흙이었던 육신의 현실을 자기 생명의 전부로 삼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생명나무 열매를 따 먹고 죄 가운데 영원히 사는 길을 막으셨습니다. 불 칼로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그저 처벌이기만 한 것이 아닙니다. 이로써 하나님은, 하나님 없이 영원히 사는 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살아있는 게 아니라 죽은 것임을 확인하셨습니다.
사람은 파라다이스에서 쫓겨났습니다. 사람만 쫓겨난 것이 아닙니다. 땅도 사람 때문에 저주를 받았습니다. 하나님 말씀 안에서 의와 생명으로 다스려져야 할 세상이 이제 죄와 사망의 질서 아래 놓이게 되었습니다.
이후 세상의 다스림은 사망 권세를 중심으로 움직입니다. ‘죽이겠다, 망하게 하겠다, 고통스럽게 하겠다’는 위협이 채찍이 됩니다. ‘살려주겠다, 먹여주겠다, 번영하게 해주겠다’는 약속이 당근이 됩니다. 사람은 살기 위해 움직이고, 인정받기 위해 경쟁하고, 의롭다 함을 얻기 위해 자기를 증명하려 합니다. 그러나 그 안에는 깊은 두려움이 있습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 버림받는 두려움, 정죄받는 두려움입니다.
인간 문명은 계속 발전해 왔습니다. 더 편리한 기술, 더 빠른 이동, 더 많은 정보, 더 화려한 도시, 더 강력한 제도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더해지지 않는다면, 이 모든 발전은 첫 사람 아담이 하나님을 떠난 상태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파라다이스 같은 세상을 만들 수는 있어도, 하나님 생명을 누릴 수는 없습니다.
사람은 선한 것을 알면서도 악을 행합니다.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미워합니다. 진실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속입니다. 겸손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기를 높입니다.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하나님 없이 살려고 합니다. 이것이 아담 안에 있는 인간의 현실입니다.
모든 사람은 이 현실 가운데 태어납니다. 우리는 처음부터 하나님 말씀을 자연스럽게 사랑하는 사람으로 태어나지 않습니다. 우리는 살고 싶어 하고, 높아지고 싶어 하고, 인정받고 싶어 하고, 자기 뜻대로 되고 싶어 합니다. 하나님을 중심에 모시기보다 자기 욕망을 중심에 놓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사람의 삶은 죽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죽음 이후에는 하나님의 심판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공정하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모든 행위를 달아 보십니다. 겉으로 드러난 행동만이 아니라 마음의 동기까지 아십니다. 사람 앞에서는 숨길 수 있어도 하나님 앞에서는 숨길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사람에게 하나님은 그가 평생 원했던 현실을 주십니다. ‘하나님 없이 살고 싶다!’는 그 선택을 그대로 허락하십니다. 그러나 문제가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가 누린 모든 것은 사실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햇빛, 공기, 물, 땅, 음식, 가족, 친구, 사회, 양심, 기회, 시간, 몸의 생명까지 모두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아도 하나님의 은혜의 인프라 위에서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심판 이후에는 하나님 없는 삶의 실상이 드러납니다. 하나님을 원하지 않는 자에게 하나님은 더 이상 은혜의 인프라를 제공하지 않으십니다. 빛 없는 삶, 생명 없는 삶, 사랑 없는 삶, 평안 없는 삶, 하나님 없는 삶이 남습니다. 모든 것을 갈망하지만 불타는 갈망 외에는 남지 않은 현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영원한 사망입니다.
그러면 이 결말을 피할 길이 있습니까? 있습니다. 그러나 그 길은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 낼 수 있는 길이 아닙니다. 첫 사람 아담 안에서 태어난 우리는 스스로 아담의 몸을 벗을 수 없습니다. 죄와 사망 아래 태어난 사람은 자기 힘으로 영생에 이를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친히 길을 여셨습니다. 하나님은 둘째 사람, 마지막 아담을 보내셨습니다.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같은 사람이 되셨습니다. 하나님의 독생자께서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아담과 같이 사람의 몸을 가지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담과 달랐습니다. 아담은 죽지 않으려고 하나님의 말씀을 버렸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죽기까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셨습니다. 아담은 자기 생명을 지키려 하다가 사망에 이르렀습니다. 예수님은 많은 사람을 위해 자기 목숨을 대속물로 주심으로 생명의 길을 여셨습니다.
십자가는 단순한 비극이 아닙니다. 십자가는 하나님 말씀이 참 생명임을 드러내는 자리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끝까지 순종하셨습니다. 사람들의 조롱과 버림, 고통과 죽음을 감당하시면서도 지신을 온전히 하나님께 맡기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심으로써 이 사실을 확인하셨습니다―“이 길이 참 생명의 길이다!”
죽은 사람을 다시 살리는 일은 창조주 하나님만 하실 수 있습니다. 이로써 창조주께서 예수님의 순종을 옳다 판결하셨음이 온 땅과 하늘에 나타났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참 사람이 무엇인지 드러났습니다―하나님 말씀을 생명으로 믿고, 하나님께 끝까지 순종하며, 하나님을 아버지로 사랑하고 의지하는 사람이 참 사람입니다.
이제 구원의 길은 우리 눈앞에 분명히 드러나 있습니다. ‘첫 사람 아담 안에 머물 것인가, 마지막 아담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갈 것인가. 죄와 사망의 몸에 머물 것인가,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새 생명을 얻을 것인가.’
성경은 말합니다―“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누구든지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고,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습니다. 믿음은 단지 예수님에 대해 좋은 생각을 갖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나를 위해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신 구주이심을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믿음은 예수님의 마음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이 생명임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돌아가며,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는 것입니다.
당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하나님은 당신을 그리스도와 하나 된 사람으로 여기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으셨을 때 당신의 옛사람도 함께 죽은 것으로 여기십니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셨을 때 당신도 새 생명으로 살아난 사람으로 여기십니다. 당신의 죄는 용서받고, 당신은 하나님 자녀가 됩니다!
이것은 값없이 주시는 은혜입니다! 돈으로 살 수 없습니다. 선행으로 얻을 수 없습니다. 종교적 업적으로 자격을 만들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거저 주시는 선물입니다.
당신은 지금 무엇을 생명으로 삼고 있습니까? 더 많은 소유입니까? 더 편리한 삶입니까? 사람들의 인정입니까? 건강과 성공입니까? 이런 것들은 좋은 선물이 될 수 있지만, 생명의 근원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 없는 파라다이스는 결국 사망으로 끝납니다.
참된 파라다이스는 하나님 말씀 안에 있습니다. 참된 생명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심판으로 부르시기 전에 먼저 은혜로 부르십니다. 죄와 사망의 길에서 돌이켜,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오라고 부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십시오. 그분 안에 생명이 있습니다. 그분 안에 죄 사함이 있습니다. 그분 안에 하나님 자녀 되는 길이 있습니다. 그분 안에 참된 파라다이스로 가는 길이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이야말로 참된 파라다이스입니다.
첫 사람 아담 안에 머물지 마십시오. 마지막 아담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오십시오.
하나님 없이 살겠다는 길에서 돌이키십시오.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는 생명의 길로 돌아오십시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십시오. 그분만이 당신의 생명이십니다.
이렇게 기도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는 하나님을 떠나 제 뜻대로 살아온 죄인임을 고백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저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신 구주이심을 믿습니다.
이제 제 죄를 용서해 주시고, 저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받아 주십시오.
하나님 말씀을 생명으로 믿고, 예수님을 따라 살아가게 해 주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파라다이스에 있으리라 하시니라(눅 23:43).